2024년 회고 -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올 한해를 되돌아봤을 때 가장 큰 수확은 인생에 대한 확고한 관점,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금 단단한 생각이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올 한해 정말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이를 한줄 한줄 곱씹으며 그땐 그랬지 식으로 반추하는 것보다는 제가 세운 관점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회고가 아닐까 싶어 적어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인생을 ‘무작위로 주어지는 복합적 질문의 집합체’ 정도로 생각합니다. 편의점에서 무슨 맥주를 고를 것인지부터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까지. 인생이 던지는 질문의 범위는 매우 넓고 그 분야 또한 다양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난해함은 문제의 분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문제의 성질에서 비롯됩니다. 인생이 던지는 거의 모든 질문은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 취업할 것인지, 올해 연말을 누구와 보낼 것인지와 같은 질문은 다음 달에 대답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거의 모든 것들에 시간 제한을 둬 놓고서는 정작 중요한 질문에 시간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고서는 조용히 있죠. 마치 곧 대답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마냥.
하지만 가장 난해한 점은, 제가 제출한 답변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여부는 제 관짝에 못이 박히고 나서야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언제일지 모릅니다.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고, 이 글이 올라가고 나서일 수도 있죠.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인생이 내내 던져대는 질문에 잘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내리는 결정 방식과는 달리,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최선의 선택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됩니다. 다만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린다면 YOLO, 그리고 YOLO 뒤에 있는 허무주의에 빠져버리기 쉽습니다.
“죽음은 랜덤하게 찾아온다” 라는 명제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 사람은 크게 두가지 모습을 보이는 듯 합니다.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허무주의에 빠져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A, 그리고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하기 시작한 B. 이 둘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두사람 모두 삶이 하나의 도화지같다는 사실에 도달했을 겁니다. 하지만 A는 도화지가 가진 재질에 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쉽게 찢어지고, 젖고, 망가진다는 특성 말입니다. 그리고 이 종이가 찢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그대로 두기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B는 내가 흰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즉, 좀 더 능동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본 것이겠죠.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단, 허무주의를 거부하고 능동성을 바탕으로, 깊은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멀리 보았을 때 내가 해내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대답하길, 노인들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이루지 못함”이 아니라 “시도하지 못함”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내가 내일 죽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는다면 그래도 그 후회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제 스티브 잡스가 한 “내일 당장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라”라는 말이 뭔지 마음 깊이 이해가 됩니다.
내년이 다가옵니다. 진짜 아무것도 계획된 게 없는 한 해의 시작은 처음이라서 좀 떨리기도 하는데요, 내년에는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기를 스스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만으로는 안되니 노력을 합시다.
2024.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