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창업을 하려고 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에 관한 글
친구 A가 작년에 퇴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퇴사하고 창업하실 생각이신가요?” 였다고. 그 친구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래와 같은 두가지 질문으로 해석이 되었다고 했다.
첫 번째, 다른 투자자들처럼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남을 설득하여 펀드레이징을 지속적으로 해서 사업을 키워나가는 행위를 할 것인지. 두 번째, 주체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고 싶은지.
어떤 질문으로 해석하더라도 대답하기 어려워했는데, 첫번째 질문이라면 내가 정말 그런 걸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서. 두번째는 주체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지 않고 사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서라고.
자연스러움이란
사람들은 인생을 시간의 흐름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소위 말하는 “인생 계획”이라는 메타포가 그러함. 스물~스물셋 정도 되는 나이에는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서른 중반쯤의 나이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하는 모든 이야기들.
그래프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낙천주의적이다 못해 naive한 생각이다. 인생은 y축, 즉 에너지에 더 가깝다. 우리가 더 이상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작용하는 모든 힘은 x축 방향이 아니라 y축 방향이다.
실제 삶은 y축 그래프에 가깝다.
이렇게 되면 실제 사고사와 같은 다양한 현실의 모습도 녹여낼 수 있다.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사람을 방치한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달 정도 먹지도 씻지도 못하게 사람을 방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확실히 시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논리의 전개로 인하여, 살아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과 정 반대의 지점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일들은 모두 죽음에 가까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위에서 말했듯 우리가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과정을 통해 사회에 나가거나 하는 일들을 생각해 보자. 매우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과정에는 모두 자아 의탁의 과정이 녹아들어 있다. 면접관이 선호하는 걸 해야 면접에 통과할 테니까.
살아있기 위해서는
나는 살아있고 싶다. 친구 A가 대답을 하지 못했던 저 질문을, 작년 연말의 나는 꽤나 선언적인 형태로 말하고 다녔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창업 준비중이에요” 라고 말했을 때, 얼마나 오랜 기간 알아왔는가와 상관 없이 “주웅님이라면 그럴 것 같았다”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꾸준히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왔다는 증거로 들렸다. 나는 대부분의 순간 살아있고 싶어서 노력했구나.
아마 살면서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의 마지막 주주 서한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많은 힘이 드는 과정이지만 그러할 가치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창업한 주변인들의 이야기만 들어보더라도 아마 매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어떠한 방향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더욱 살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