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이라는 센서를 켜라
개인적인 생각에 관한 글
나의 자아 실현을 위해서던, 아니면 생존을 위해서건. 우리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문제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에 때문에 일반화 할 수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모든 문제 상황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치환 가능하다. 현재 위치 에 놓여있으며, 궁극적으로 위치 로 옮겨져야 하는 상태. 즉 내가 놓여있는 현재 상황 와 요구되는 상황 와의 괴리가 있고, 나는 의 위치에서 움직어야만 문제를 풀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더 전제된다. 바로 우리가 주변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지 못해야 한다는 것. 왜냐면 우리가 주변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경우는, “문제”라고 인식하기 전에 스스로 결론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운전에 충분히 익숙한 상태에서 동네에 있는 새로운 카페를 가본다고 했을 때,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네비게이션을 키고 운전하여 그 카페로 갈 것이다. 초행길이라서 조금은 어색하겠지만, 어떤 인지적 부하나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면, 늘 부모님과 함께 가던 카페에 가는 길도 매우 어렵고 고된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리캡. 우리는 야생에서 살고 있으며, 야생에서의 실패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장 쉬운 선택은 크게 두 가지이다.
- 일단 앞으로 달려나간다
- 멈춰서 그 상태에 있는다.
잠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시선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자. -> 사이에는 이러한 지형이 존재하고 있다.
불이 꺼져있는 상태에서 지형을 파악하지 못하고 직선 거리로 달려 가려고 시도하면, 아마 실패라는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낭떠러지를 파악조차 못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지속적으로 움직이되, 계속 주변을 파악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 떨어지지 않는 선이라는게, 확실히 여기까지 가면 되겠다- 하는 절대적인 선이 있는게 아니고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실패의 종류도 되게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아닌 지점이 누구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걸 피해서 어떻게 성공이라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물론 한 발자국 움직일 때 마다 주변을 리서치하면 피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여러 복잡한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충분히 리서치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실패를 회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경시하곤 했던 직감(촉)을 잘 활용해 볼 수 있음. 직감/촉이라면 비이성적 기준이라고 생각이 들곤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쌓아왔던 빅데이터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가 보내는 비언어적 신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나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가끔 모순이 캐치될 때가 있다. 정확히는 과거에 했던 이야기와 어긋나는 발언들이다. 내가 이걸 캐치하는 과정은, 듣고 논리적 허점을 느끼는게 아니라 뭔가 어? 싶은 모먼트를 먼저 느낌. 그리고 그 감정을 느꼈다면 방금 대화를 복기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한다. 곰곰히 되짚어보면 과거의 발언들과 불일치한 지점이 보인다. 나는 이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사용함으로써 나를 (혹은 다른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파악하는 지표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직감”은 충분히 훈련할 수 있다. 메타인지를 훈련하는 방법이랑도 비슷한데,
- 내가 어떤 감정/기분/신체적 반응을 느꼈는지
- 이 감정/기분/신체적 반응을 느꼈던 비슷한 순간이 언제인지
- 그 순간에 어떤 점이 그 감정과 느낌을 트리거했는지
- 지금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있는지
- (반복)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쎄한 느낌”을 명목지화하고, 그 쎄한 느낌을 일종의 트리거로 삼음으로써 과거에 경험했던 문제를 이성적 탐험을 거치지 않고도 빠르게 복기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