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동네.
오늘은 SUV 한 대가 냅다 프론트를 드라이브스루 출구로 들이미는 것을 보았다. 바로 옆에 돌아나갈 길이 있었음에도. 굳이. 그 차는 결국 드라이브스루를 역주행해서 밖으로 나갔다.
동네에 있으면 이런 일을 생각보다 흔하게 본다. 대체 왜 저러지 싶은 사람들. 사실 세상 어디에 가든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겠다만, 이 동네는 특히 그 빈도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
몇몇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본가에 들어와 살게 된지 어언 9개월 가량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본가에 들어와 사는 것이 꽤나 안락했지만, 열여섯의 내가 왜 이 동네를 벗어나려고 노력했는지 깨닫는 순간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수록 주변 환경이 나를 계속 침잠하게 만드는 늪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근래 점차 침잠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부쩍 자주 마주하게 된다.
나를 저 아래로 끌어당기려는 순간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고 강력한 것은 다름 아닌 질문을 받는 순간이다. 점차 주변에서 던지는 질문이 거기서 거기로 변하고 있고, 그 점이 나를 가장 피곤하게 만든다. 연애, 결혼, 집, 주식과 같은, 소위 말하는 “다들 그럴 때”가 됐기 때문에 던진다는 질문들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질문만 받고 있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을 까먹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어딘가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것 만 같다.
이런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 지난 몇년간 “어떻게 성장하지?” 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기억에 남는 대답들이 하나도 없고, 그 뒤로 내 삶이 그렇게 바뀌지도 않은 듯 하다. 그렇다면? 질문이 잘못 된 거겠지.
최근 지원서를 쓸 일이 생겨서 오랜만에 나를 소개하는 글을 적었다. 나쁘지 않게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보니 공통적으로 “너무 모호하다”라는 피드백을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글을 적고 또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무딘 글이었다는 점이다.
제출을 완료하고 왜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게 되었는지 고민해보았고, 실마리는 피드백을 통해 바뀌어가는 글의 방향을 통해 잡을 수 있었다. “어떻게 성장하지?”라는 나의 질문에는 어느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지가 빠져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걸 놓쳤다니.
돌이켜보니 저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았던 순간부터,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기 시작했던 듯 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다 가능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하나의 방향성을 확고히 정하고 앞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 결과 공허한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었다.
AC2에서 배웠던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모든 정답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 내가 과거부터 어떤 것들을 원했는지 되돌아보기 시작했고, 몇가지 확고한 방향을 떠올릴 수 있었다.
-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문제를 다양하게 풀고 싶다.
- 나는 세상을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방향성을 기본으로, 몇년간의 회사생활 끝에 내린 또 하나의 방향성을 추가하게 되었다.
- 직접 플레이어로써 활동하고 싶다.
이런 기준이 세워지고 나니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명확해졌다.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반복되는, 나를 수렴시키려는 질문이 아니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내가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사람은 생각보다 질문에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이다. 똑같은 질문을 받으면 누구든 간에 비슷한 대답을 하기 마련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듯, 더 크고 넓은 대답을 할 수 있게 되려면 더 좋은 질문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 좋은 질문을 마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좋은 환경일 것이다.
내가 이 동네와 멀어져 있는 동안 한번도 받지 않았던 질문을, 동네로 이사 온 올해 내내 몰아 받았던 것처럼.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그 자체로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내가 위와 같은 질문을 간절히 원한다면,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일반적인 환경으로 옮겨가야 한다.
비단잉어의 특이한 성질을 알고 있는가? 비단잉어는 먹이가 충분하더라도 연못의 크기가 작다면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큰 연못에 있다면 충분히 커질 수 있다.
우리도 비단잉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더 크고 넓은 환경에 있을수록, 더 크고 넓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 삶이 지금보다 더 대답하기 즐거운 질문들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이 던진 질문에 대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좋은 질문을 더지고, 그에 따가 더 나은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음에 이 글을 공유할 때가 된다면, 내 세상이 충분히 더 커 있기를 바란다. 나는 더 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