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회고
개인적인 생각 그리고 회고에 관한 글
2025년도 끝나간다. 뭔가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낸 성취는 없다. 내가 리드였다면 KPI 달성 실패로 아마 이곳저곳 불려다녔을 테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덜 흔들릴 수 있을지 조금은 선명하게 알게 된 듯 하다.
한 해를 온전히 학교에서
올해는 8년만에 한 해를 전부 학교에서 보냈다. 스물 한 살의 나에게 말해줬다면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소금 뿌려 쫓아냈을 만한 이야기가 현실로 일어났다.
학교라는 공간은 참 신기하다. 나의 20대를 통틀어 제일 해이해짐과 동시에, 참 오랜만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제로 수행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올해 참 많은 주변 분들이 “자퇴하지 않고 왜 계속 학교를 다니느냐” 라는 질문을 주셨는데, 여러가지 이유를 대곤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퇴하지 않을 이유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샌드박스로는 꽤나 의미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이번 하반기부터는 학교를 “학습”에 대해 학습하는 공간으로 써보고 있다. 나의 목표는 최대한 적은 시간을 사용해서 최대한의 학습 효율을 내는 것이다. 어느 때는 성공하고, 어느 때는 우선순위가 밀려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지난 8년간 나와 아예 다른 관점을 갖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어서,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꽤나 생각할 거리들이 많다. 반성하게 되는 부분들도 많고. 이런 생각들에 잠기다 보면 기존에 갖고 있던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비유해서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학습 전이의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점차 학교에서 배우는게 없다라는 말을 줄이게 되었다. 물론 학교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경험을 준 것이 아니기에 학교 시스템 자체에 대한 냉소 또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격성에 대해서
올 한해의 운동은 복싱이었다. 초반에는 조금씩만 나가다, 점차 자주 나가서 길게 운동하고 돌아오곤 했다. 언제 링 위에 올라가나 싶었지만 최근에는 꽤나 자주 올라가기도 했고, 체력이 많이 늘었다던가 자세가 갈수록 좋아진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복싱을 하면서 깨달은 테마는 공격성이다. 링에 두번째 올라갔을 때, 도저히 이대로는 실력이 늘지 않을 거 같아서 지켜봐주신 코치에게 물어봤다. 지금 딱 하나만 고칠수 있다고 했을 때 어떤걸 고치는게 가장 좋아보이는지. 코치님께서 “더 적극적으로 공격해야” 더 나은 스파링이 될 수 있으며, 지금 좀 방어적으로 보인다는 말까지 곁들여 주셨다.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복싱을 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최근 1~2년간 방어적으로 변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들은 피드백이니 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복싱을 열심히 했던 것도 있다. 이 링에서 조금 더 공격적으로 굴 수 있게 되면 현실에서도 그런 감각을 전이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마이크 타이슨의 유명한 말, “누구든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가라에 펀치가 한방 꽃히기 전까지는”. 이라는 말에 나오듯, 링 위에 올라가서 바디 한번을 허용하는 순간 이성이 날라가고 머리에 피가 끓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대한 빠르게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다른 활로를 찾아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흥분한 상황 그대로 표출하다가는 동작이 커져 더 다른 공격을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지만, 점차 실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적용하다 보니 복싱이 더욱 재밌어졌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꾸준히 다닐 생각이다.
잡음에서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
나의 상반기 회고의 주제는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뜬금없이 소고기 미역국? 싶지만, 필요없는 것에 힘 쓸 바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고기 미역국을 한그릇 끓여주는게 훨씬 낫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늘 가져야 하는 주변 상황에 대한 감사함을 여실히 깨닫게 되는 건, 그 환경과 멀어지게 되는 여행에서인듯 하다.
여름에 떠난 태국 > 영국 > 프랑스 > 모나코 일정의 시작점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가득 채웠던 밴드 “오아시스”의 재결합 기념 콘서트였다. 여행을 가는 시점에는 내한 공연 일정이 확정된 이후이기에 굳이 갈 필요가 없었지만, 계속 영상으로만 보던 웸블리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애초에 그만큼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낭만적이라는 뜻도 되었고, 절대 잊혀지지 않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중간에 파리를 거쳐 왔지만, 가장 큰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니스 - 모나코. 그냥 날씨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차를 빌려서 갔던 모나코 역시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는 꼭 다시 가서 두주 이상은 니스에 있어야겠다 다짐했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일정을 엄청 복잡하게 세우지 않고, 그날그날 가보고 싶은 곳과 컨디션을 기반으로 즉흥적으로 정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친구와 장기 여행을 가는 거여서 친구의 의견을 많이 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취향들을 되짚으며, 수많은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는 여행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그 공간에서 했던 태도와 행동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주변의 익숙한 환경이 얼마나 저의 생각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놓쳤는지 명확하게 보이곤 한다. 짧지 않은 두 주간의 여행동안 다양한 잡음에 가려져있던 생각들을 더 날카롭게 정리할 수 있었고, 1차적인 방향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상반기 회고글에 적었듯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이었다.
40시간,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날카로움
귀국하고 나서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다. 회사를 다니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모아둔 돈이 바닥이 나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몇 회사의 면접을 보면서 “40시간”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마다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 중 한명인 찬희가 샌프란시스코로 초대해 주었다. 와서 분명히 느끼는 것이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한국에 있으면 이 고민이 끝나지 않고 맴돌 것임을 알았기에 일단 출발했다. 표를 사고 나니 6시간 뒤에 출발이었다.
대부분의 미친척들은 그 사람의 큰 자산이 되는 경험으로 이어지곤 한다. 냅다 떠난 여행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말끔히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어떤 위치를 목표로 해야하는지도 꽤나 명확해졌다. 다른 사람들을 보며 자극받는 기분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두 주가 약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머리속을 가득 채운 화두는 날카로움이었다. 내가 평소에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과 고민도 여기 사람들에게 내뱉기에는 날카롭지 못하구나. 더 날카로울 수 있는 모먼트들이 있구나 싶었다. 지난 몇년간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에 괴로웠는데, 그 실마리와 방향성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달까.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니 오히려 다음에 뭘 해야할지 명확해졌다.
귀국하는 길에 생각은 말끔하게 정리되었고 이리저리 거절의 의사들을 밝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이메일이 있어 남겨본다. 넥스트 스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모두 비슷한 반응을 보여서 기분이 꽤나 이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창업 할 사람에 대한 기준이 나와는 다를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꽤나 오래전부터 일관적이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 같았다.
기본기 그리고 고통에 대해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매일 꼭 운동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일상 생활에서도 적절한 텐션감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과, 일상 생활에서 얻는 고통부터 감내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습관을 들일 필요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기존에 했던 운동과는 다르게, 매일 매일 조금씩 부하를 증가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 매일 매일 꼭 해야 하는 운동들을 추가했다. 매일 모든 복싱 세션이 끝나고 케틀벨 스윙을 3세트씩 하기로 다짐했고, 복싱장이 열지 않는 주말 중 하루는 수영장에 가서 500m 이상은 운동하고 오기로 했다.
첫 3일 이후로는 진짜 너무 힘들어서 운동을 가기도 싫었다. 하지만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일단 매일 복싱장에 갔다. 그렇게 몇 주를 하고 나서 스파링을 하니, 고질적인 문제였던 하체를 제대로 못 쓰는 문제도 해결됐고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그때쯤 코치님이나 스파링 파트너 분에게 체력이 좋다던가 자세가 좋다는 칭찬도 들었다.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줬던 고통과, 위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고통은 그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적절한 수준의 고통은 오히려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로써 작동하게 된다.
일련의 경험 이후로는 최대한 매일 운동을 나가려고 하고, 겪는 고통들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마법처럼 매끄럽게 되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쌓이기 시작한다면, 내가 원하던 수준의 나를 다시 만나는 날도 언젠간 오리라 믿고 있다.
감사함을 담아
작년 AC2 도중, 김창준님 코칭에서 들었던 피드백이 기억에 남는다.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마라. 나는 대부분의 활동들을 혼자 하기를 원했고,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일종의 빚을 지는 것만 같아 피하고는 했다. (오히려 도움만 주려고 했었다)그러다 보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한계가 있었고, 거시적으로 보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코칭 세션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원래 나라면 하지 않았을 방향으로 많은 선택을 했던 한 해였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남에게 부탁할 수 있으면 부탁하기. 내가 부탁을 받는 것이 그리 기분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번 곱씹으며 여러 부탁들을 시도해 보았고, 모두 긍정적으로 답해 주었다.
그리 크지는 않은 부탁부터 (나의 고민을 갖고 이야기 나눠달라고 부탁하기, 경험 물어보기)부터, 조금 리스크가 있을 수 있는 부탁까지 (아는 분 소개해달라고 이야기해보기 등) 다양하게 부탁해 보았고, 그때마다 훨씬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경험을 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만큼 고민했고 그것이 보였기 때문에 다들 좋게 반응해준 것 아닐까 한다.
이런 모먼트들을 보고 있자면, 단순한 감사함을 넘어서서 더 잘해서 나도 돌려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내년에는 더 많은 도움 요청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더 잘 도와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Be yourself
며칠 전 창업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환경이 나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화 끝에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창업은 Outlier 게임이며, 그런 Outlier를 추구하기 때문에 날카로움을 추구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사회적 환경은 그러한 Sharpness와 Rudeness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조금 덜 귀찮은 대신 크나큰 퇴보를 택하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의 safe area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행위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는 정말 어렵고 힘든 행위이다. 관성의 법칙처럼 사람들은 스스로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프 베이소스의 마지막 아마존 주주서한이 떠올랐다.
You have to pay a price for your distinctiveness, and it’s worth it. The fairy tale version of “be yourself” is that all the pain stops as soon as you allow your distinctiveness to shine. That version is misleading. Being yourself is worth it, but don’t expect it to be easy or free. You’ll have to put energy into it continuously.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소위 말하는 삽질이다. 재미있게도 끝없이 날카로워지기 위해서는 끝없는 삽질의 과정이 수반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몇개월 그리고 몇년 지나고 나면 다 진정한 나의 것이 되곤 한다. 스스로 진단하기에 지난 몇년간의 가장 큰 실수는 어찌 보면 이런 삽질을 거부하고 처음부터 화려한 문제를 풀고싶어 했기 때문인 듯 하다.
내년에는 나의 것을 할 거다. 주변인들을 보고 있자면 26년의 나에게 고통은 확정적인 듯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냥 해야지. 지금의 내가 많은 것을 모른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대가리 박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올 한해를 통해 다행히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어떤 식으로 평정심을 찾고, 어떤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되는지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상황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도.
사실 이 선택은 용기로만 가득찬 선택에 가깝다. 여유 자금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다른 여러가지 이유보다 나의 인생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 불쾌했다. 아마 지난(**至難)**할 내년을 지나고 났을 때에는 나의 삶이 조금은 더 커져 있기를 바래본다.